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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름 내는 날 - 고은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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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2017.11.28 작성자 no_profile nokonoko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좋아요 0 조회수 368 댓글 0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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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름 내는 날 - 고은

 

 

내 앞에서 자란 자식
 벌써 코밑에 잔털 난 자식
 쇳내 나는 이놈 데리고
 경운기 함께 탄다
 아랫뜸 지나
 꽤나 먼 길 거름을 낸다
 갓난이때 잘도 보채던 놈이
 이제는 입이 굼떠
 별반 성난 듯이 말도 없다
 이놈하고 가다가
 상묵이네 논 둔치에서
 까딱 엎어질 뻔했다가도
 용케 경운기 손잡이 잘 휘어 잡았다
 추운 날도 느린 새는 느리게 난다
 사뭇 점잖다
 우리 짚뭇은 다 들여가고
 다른 집 짚벼눌이 더러 논에 있다
 올해는 객토 못하는 대신
 여름내 만든 퇴비거름
 맛있는 거름
 논에 내니
 논 좀 보아라
 논이 헤헤 입 벌리고 좋아한다
 남의 논들이야
 너무 일직 방정떤다 할지 모르나
 우리 논이 좋아하니
 나도 내 자식도 함께 좋구나
 하늘이야 높아서 소 닭 보듯 하고
 다섯 번 거름 실어내면
 한나절이 넘어서
 거름냄새 퀴퀴 쩐 몸으로
 비로소 내 자식 입을 연다
 아버지
 내년 절충못자리는 내가 할께요
 어느덧 덧없구나 내 자식이 자식 아니다
 나와 내 자식 이 들판에서 비로소 나란히 형제다
 어서 가자 가서 술 한잔 주고받자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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